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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500

안타까운 죽음, 조선의 5대 왕 문종.

 

문종, 그는 애통하게 죽은 인물이다. 그는 세종대왕시절에 여러분야에 걸쳐 작품을 남겼으며 기술분야에도 매우뛰어났던 군주이다. 물론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났으나 애석하게도 일찍 사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 대한 자료들이 부족한 현실이다.

문종(1414~1452)은 세종대왕의 아들로 조선의 5대 임금이다. 그는 조선의 역사장 가장 위대한 군주였던 세종대왕의 장남으로서 일찍이 세종대왕의 문학적 기질을 비롯해 문화적인 기질을 아주 잘 물려받아 문종도 소양을 비롯한 여러 과학기술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문종이 커가면 커갈수록 세종의 근심이 커져만 갔다.

문종이 몸이 약하니 왕위에 올라도 왕위를 보존하기 힘들것이라 판단했기에 고민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자신의 왕위까지 단 한번도 장남이 왕위를 세급한 적이 없었기네 자신의 아들대에서라도 장남이 왕위에 오르기를 원했던 세종이기에 셋째 아들이었던 수양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고 장남이었던 문종을 세자로 책봉했던것이다.

문종은 병에걸려 몸이 아픈 세종을 대신하여 자신이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국을 운영항때 세종의 업적을 이어서 문화를 중시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문종은 아버지인 세종을 닮아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났던 임금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하나.

 

사람들은 잘못알고있다. 측우기를 생각해내고 개발한 사람이 장영실이라고. 그러나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은 바로 문종.

 

그럼 어째서 측우기는 장영실의 작품으로 알고 있을까?

아무래도 세종시절 때 장영실을 강조하면서 아이디어와 구상을 한 문종보다는 측우기를 만들며 실행시킨 장영싱에게 비중을 크게 두어서 역사가 진행되어진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문종은 측우기 뿐만아니라 강에다가 눈금을 표시하여 강의 범람을 막을수있는 측정을 도입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1452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데, 아버지인 세종대왕의 죽음을 너무나도 슬퍼한 나머지 문조은 세종대왕의 장례식이 있은 얼마뒤에 사망하고 만다. 그의 이런 짧은 삶은 우리에게 안타까운 점을 남겼다. 세종의 문화적인 정책을 이어받아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수도 있었지만, 그는 애석하게도 짧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문화에서만 손해가 아니었다. 세조 때 시행되었던 6조 직계제는 태종 때의 6조직계제를 따라서 한것인다, 세종부터 단종때까지는 의정부서사제가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의정부서사제는 신하와 왕과의 조화를 꾀하며 정치를 하는 덕이고 6조직계제는 왕권의 강화를 말한다.

의정부서사제는 왕권과 신권을 조화하였기에 나라에 대한 일념으로 정치를 했던 반면, 직계제는 왕의 마음대로 했다는 점. 문종 때 제대로 실행되고 끝나 안타까움이 남는것이다.

 

짧았지만 문화군주로써의 면모도 있는 문종. 우리는 그에 대하여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는 분명 조선의 5대 군주였으며, 문화를 소중이 여긴 임금이었다. 문종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좀더 많은 조명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