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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일기

아빠 나야

 아빠 잘지내?

난 아빠 가고 난 뒤로 그럭저럭 잘지내 

사실 아직도 크게 실감은 안나는데 그냥 평소대로 지내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웃고 적당히 불행하고 그래

가끔 유란이가 혼자 말없이 누워서 휴대폰 보고 있으면 뭐하나 볼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울고 있더라고

그거 보면서 맘 아픈거 말고는 다 괜찮아

 

처음 몇 달은 둘째고모나 막내고모한테서 연락이 자주 왔어

막내동생 젊은 나이에 떠나보내고 남겨진 조카들이 걱정되서 연락하시는 것 같아

 

근데 막내고모는 술에 취해서 자주 전화와 

아빠가 생각나나봐 

그래서 나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하더라고 

전화기 넘어로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참 안좋더라

 

나도 이렇게 잘지내고 있는데 

막내고모는 그렇지 않아보여서 괜히 내가 미안해지기도 해

 

유란이랑 나는 엄마랑도 잘지내고 있어 

대부분은 엄마가 맞춰주는데 아무래도 아빠랑 살면서 자리잡힌 생활습관이 있는지라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어

그런데 엄마라 그런지 금방 적응되더라고

지금은 괜찮아 

 

나는 만약에 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데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해

만약에 내가 먼저 신경쓰고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만약에 그 교수랑 내가 면담하고나서 곧장 호스피스병동으로 결정을 했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딸기를 사가지고 오라는 아빠의 마지막말을 흘려듣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간호사들이 안된다고 해도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었더라면

 

아빠 나는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야 아빠가 더 잘알지?

그런데 그 시간들은 정말 후회가 된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가지고 계속 살기에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잊은척 지내고 있어 

 

나는 겁이 많아서 아직도 아빠 휴대폰을 보지 못해

그냥 내 침대에 놔두고 있어

보기가 무섭더라고 

아빠랑 마지막 통화하던 내용 녹음도 있고

우리 사진도 있고

문자나 카톡방 내용도 있는데 

하나도 안봤어

무서워

울고 싶지 않아

 

아빠 큰딸은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네

약간 아빠랑도 비슷한것 같아서 웃기기도해 

 

 더 단단해 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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